자본주의적 효율성은 전적으로 물질적 자원과 관련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노동자가 X, Y, Z라는 과업을 수행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줄이는 것과도 관련된다. 이러한 허위의 ‘효율성’이 자본의 인종적 체제 아래에서 중요하게 고려되는 까닭은, 특정 활동에 투입되는 시간, 즉 노동시간이 짧아질수록 노동자에게 지급해야 할 임금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 결과 자본가의 이윤은 증가하지만, 노동자의 몫은 늘어나지 않는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자본의 인종적 체제 아래 이용되는 시간의 폐지와 노동의 폐지가 서로 연결된다. 이러한 방식의 시간 측정은 자본주의적 범주로서의 노동을 생산하는 데 기여한다. 최근 자본주의적 작업장 혁신의 상당수가 노동자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그들이 계속 업무에 집중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른바 ‘대퇴사 시대’를 맞아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극심한 감시에 시달리는 일자리를 집단적으로 거부하거나, 노동 거부의 한 형태로 일을 대충 하고 있다. 그들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자신의 삶과 안녕이 상사나 다국적 기업에 얼마나 하찮게 취급되는지를 깨달았다.
좌파™의 적지 않은 이들은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에서 심화되는 이러한 계급적 적대를 자본의 인종적 체제로부터 벗어날 길로 보지 않는다. 그들은 미래의 선거나 기존 방식의 노동운동에 기대를 건다. 오늘날 프롤레타리아의 자율적 활동을 마주하고도, 이미 정점을 지나버린 투쟁 형식만을 되풀이해서 역설하는 것이다.
이러한 대규모 노동 거부가 어떻게 현존하는 사태를 폐지하는 현실의 운동으로 한층 더 구체화될지는 앞으로 지켜보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의 투쟁으로부터 단순히 물려받은 형식이 아니라, 당면한 사회적 상황이 새롭게 만들어내는 형식을 취하게 되리라는 점을 우리는 점점 더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계속해서 함께 사유하고, 토론하고, 전략을 모색해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