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rce : https://theanarchistlibrary.org/library/bruno-astarian-gilles-dauve-everything-must-go
전통적인 정치 개혁이 신뢰를 잃은 반면, 커먼즈 이론은 아래로부터의 사회 변화를 바라는 우리의 열망에 호소하며, 세계 곳곳에서 실제로 이루어지는 부분적 변화들과 공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을 얻는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 불가피한 것으로 여겨지는 변화의 한계를, 변화의 궁극적 목표로 제시한다.
커먼즈 이론가들이 인기를 끄는 까닭은 개혁을 혁명적인 색채로 칠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본 안에 있으면서도 어째서인지 자본에 물들지 않은 어떤 힘, 점차 성장하여 마침내 자본을 대체할 수 있는 힘이 존재한다는 환상과 가장 잘 들어맞는, 가장 만족스러운 사회 변화의 형태로 기울어진다. 커먼즈 이론은 쉬운 공산주의다. 세계 인구의 99%가 이미 박탈당했으며 행동에 나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가? 다수가 곧 안전장치라는 셈이다.
서구 노동운동의 쇠퇴와 함께 옛 사회주의는 유행에서 밀려났지만, 새로운 유형의 개량주의 역시 더 나은 세계를 향한 점진적 조치들을 내세운다. 이는 시민사회에 침투하여 그 내부를 서서히 장악하려는 그람시적 전략과 유사하다.
서문
시대가 변하고 있는가?
글쎄… 그렇다.
역사적 규모에서 보자면, 격동의 1960~70년대 위기로부터 새로운 대안이 탄생했다. 요컨대 프롤레타리아의 ‘반노동’ 활동은 전혀 다른 전망을 열어놓았다.
그러나 이 획기적인 패러다임의 출현은 한 시대를 가르는 이정표라기보다, 다가올 시대의 전조에 가까웠다. 사회적 지진은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주체성을 전면에 부각할 만큼 강력했으나, 반란에 이를 만큼 강력하지는 않았다. 그것이 이른 것은 마르크스로부터 평의회주의와 보르디가주의 등을 비롯한 공산주의 좌파를 거쳐 계승된 확신들을 뒤흔드는 일이었다.
1970년대까지 공산주의 이론은 프롤레타리아 반란이 권력을 장악한 뒤 시행할 일련의 조치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서로 대조되고 대립하는 입장들이 있었지만, 그 근간은 상당히 비슷했다. 자본가의 재산을 몰수하고, 모두에게 자주관리되고 계획된 노동을 부과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강령이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된 까닭은 이론가들이 그것을 논박했기 때문이 아니다. 상당한 규모의 적극적인 프롤레타리아 소수파가 노동에 저항했고, 노동과 생산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의 강령을 실천적으로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공동체적 협동노동, 곧 자본으로부터 해방된 임금노동의 형태를 취한다 해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저류로 인해 우리와 같은 사람들은 공산주의 좌파의 일부 교리와 그 현대적 변형을 거부하게 되었다. 예컨대 생태적 자각의 영향으로 오늘날에는 ‘이행기’를 중공업 생산력의 막대한 성장과 동일시하는 사람이 드물다. 그러나 적지 않은 급진주의자들은 화폐와 노동 같은 핵심적인 자본주의 범주조차 진정한 프롤레타리아적 또는 민중적 통제 아래 놓이기만 한다면 존속해도 무방하다고 본다.
이것이 이른바 ‘코뮤니제이션communisation’이 등장한 배경이었다. 코뮤니제이션이란 점진적이고 평화적인 진화가 아니라 역사적 단절로서의 혁명, 즉 공산주의의 전제조건이 아니라 공산주의 자체를 창출하는 혁명을 뜻한다. 임금노동, 삶의 나머지 부분과 분리된 노동시간, 화폐, 재산, 그리고 사회생활과 갈등을 중재하는 국가기구들은 모두 사라져야 한다. 그것들은 집단적으로 운영되는 데 그쳐서는 안 되며, 공동적이고 무화폐·무이윤·무국가적인 삶의 형태로 대체되어야 한다. 사회 변화에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 변화는 첫날부터 시작될 것이다. 반란자들이 서로 관계 맺고, 작업장을 다루며, 시가전을 조직하고, 먹을 것을 마련하는 방식이 이후 사태의 전개를 결정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이 자리 잡기까지는 시간이 걸렸고, 안개와 혼란이 걷히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공산주의 이론의 몇몇 근본 전제에 의문을 제기하는 일은 이른바 상식뿐 아니라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혁명 원칙에도 맞선다. 공산주의를 비경제non-economy로 이해하는 것, 즉 사람들이 사물을 생산하면서도 공산주의적 생산약식은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필수적이지만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 메시지를 가능한 한 명료하게 전달하기 위해 이 책은 서로 보완하는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공산주의적 반란은 어떤 모습일 수 있는가? 현재의 위기는 위기로부터의 혁명적 출구가 무엇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지를 묻게 한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신의 착취 때문에 주기적으로 일자리를 구할 수 없게 되고, 그 결과 가장 직접적인 생존과 재생산마저 위협받는 역사상 최초이자 마지막 피착취 계급이다. 자본주의 위기가 발생하고 심화되면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신의 사회적 결합과 직접적인 재생산을 회복할 수 있는 다른 사회형태를 찾기 위해 봉기할 수 밖에 없다.
둘째, 19세기 및 20세기 대부분과 오늘날의 주요한 차이는 이제 공산주의를 연합한 생산자들의 사회로 구상할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 주장을 타당한 가설에 근거 짓기 위해서는 마르크스의 가치이론을 재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 ‘마르크스로 돌아가기’에는 마르크스에 대한 재평가가 수반된다. 우리는 더 이상 『자본론』 제1장을 우리 시대에 적합한 가치이론의 초석으로 간주할 수 없다. ‘추상노동’이라는 개념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수행하던 노동을 착취에서 해방된 형태로 공산주의에 투영하는 것보다 나은 방안을 생각하지 못했던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이론화되었다. 그들에게 노동은 불가피한 인간 활동이자 자연과의 유기적 교환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노동의 내부에 가치의 원천이라고 여겨지는 추상적 차원을 발명하였고, 공산주의적 계획을 통해 그것을 제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 가치의 폐지가 노동의 폐지를 함축한다는 사실을 이해할 때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논의가 매우 고답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말하는 것은 현실 세계이다. 자전거와 문, 커피와 자녀 양육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은 오늘날 자본과 임금노동의 관계까 규정하는 삶의 방식과 연결되어 있다. 이것이 제3부에서 이른바 사소한 문제부터 중대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수많은 일상적 쟁점으로 논의의 범위를 넓히는 이유다. 마르크스는 기원전 2세기의 해방노예 출신 극작가를 인용하며 “인간적인 것이라면 무엇이든 나에게 낯설지 않다”고 말하곤 했다. 추상의 영역으로 나아가는 일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듯이, 어느 정도의 유토피아적 상상도 해로울 것은 없다. 예를 들어 감각적 쾌락을 생산 활동에 통합하는 방법을 생각해보는 것은 노동의 폐지뿐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의 예술을 지양하는 일까지 구상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접근은 가족, 스포츠, 과학, 도시계획을 비롯한 유사한 역사적 구성물에도 분명히 적용될 수 있다.
결국 이론가는 자기 자신에 관해 말한다.
제1부: 위기 활동과 코뮤니제이션1
브뤼노 아스타리앙
서론
현재의 위기는 위기로부터의 혁명적 출구가 무엇일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일반적으로 위기는 공산주의 이론이 버려지는 도가니다. 공산주의 이론은 과학도 정치도 아니며, 경제학도 철학도 아닌 독자적인 범주라는 점에서 고유하다. 이론을 독특하게 만드는 것은 그것을 떠받치는 계급 또한 독특하다는 사실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역사상 최초이자 마지막 피착취 계급으로, 그 착취는 주기적으로 노동할 수 없는 상태를 초래하며 가장 직접적인 재생산마저 위기에 빠뜨린다. 자본주의 위기가 발생하면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신의 사회적 결합과 직접적인 재생산을 회복할 수 있는 또 다른 사회형태를 찾기 위해 봉기할 수 밖에 없다.
자본주의의 역사 전체를 통틀어 이러한 대안적 형태는 공산주의라 불려왔다. 물론 그 말에 부여된 내용은 시대에 따라 크게 달랐다. 그럼에도 공산주의 이론은 언제나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분석과 비판,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가 자본주의 위기로부터 벗어나는 길에 대한 전망 사이를 오가는 반복적 운동으로 특징지어졌다. 각 시대에 구상된 공산주의 사회는 자본과 프롤레타리아트의 관계가 역사적으로 구성된 방식에서 비롯된 고유한 특징을 지녔다. 다시 말해 계급관계 자체에 역사가 있듯이, 공산주의라는 관념에도 역사가 있다. 자본주의적 사회관계의 근본 내용, 곧 잉여가치의 추출이 불변한다고 해서 그것의 역사적 구현 형태들까지 동일한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공산주의 이론을 특징지어온 것은 프롤레타리아 반란이 권력을 장악한 뒤 시행한 일련의 조치들로 이루어진 강령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왔다는 점이다. 이러한 일반적 정식은 시대마다 달랐다. 『공산당 선언』의 강령, 곧 국유화는 파리 코뮌의 직접적 집단민주주의와 같지 않았으며, 후자는 다시 1917~1918년 러시아와 독일 혁명의 노동자평의회와도 달랐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원리는 같았다. 어떤 형태로든 자본주의 위기에 의해 프롤레타리아트가 내몰리는 반란의 귀결은 정치권력의 장악과 프롤레타리아 독재였다. 그것이 민주적 형태, 곧 평의회이든 전제적 형태, 곧 당이든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언제나 자본가에게서 재산을 박탈하고 모든 사람에게 노동을 부과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그 지점에서 사회가 필연의 왕국으로부터 자유의 왕국으로 이행해야 하는 과도기가 시작된다. 이것이 공산주의 혁명의 강령적 도식이다. 그러나 이 도식은 이제 시대에 뒤떨어졌다.
I. 위기와 위기 활동2
위기는 경제적 현상이 아니라 사회적 현상으로, 곧 자본과 프롤레타리아트 사이에 사회관계가 겪는 위기로 이해해야 한다. 자본주의적 사회관계의 위기가 심화되어 반란적 국면으로 전환될 때, 프롤레타리아트의 활동은 번영기에도 결코 멈추지 않는 통상적인 계급투쟁의 과정에서와는 질적으로 달라진다. 나는 반란 속에서 나타나는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이러한 특수한 형태를 위기 활동이라 부른다.
공산주의라는 문제 전체는 바로 이 특수한 순간에 뿌리를 둔다.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 사회와 노동/자본의 모순을 극복한 것으로서의 공산주의 사이의 연관이라는 문제가 사회적으로 제기되는 것은 바로 여기에서, 오직 여기에서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회의 코뮤니제이션 역시 궁극적으로 이 지점에서 시작될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에서 위기 활동은 19세기 파리의 바리케이드에서도, 오늘날 빈번하게 일어나는 폭동에서도 나타난다. 바로 이러한 순간들을 통해 이 개념의 특수성을 이해할 수 있다. 현재의 위기가 반란적 국면들로 전개된다면, 위기 활동은 당연히 계급 모순이 도달한 역사적 수준을 드러내는 고유한 특징들을 띠게 될 것이다. 그리고 코뮤니제이션의 실질적인 가능성이 형성되려면 현재 폭동들이 지닌 한계를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넘어설 필요가 있다.
I.1 계급 간 상호 전제가 위기에 빠지면서 자동적 사회 재생산은 사라진다
다른 생산양식에서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도 노동계급과 소유계급은 서로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는 프롤레타리아트가 노동을 중단하는 즉시 생산수단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된다는 점에서, 이러한 상호 전제가 한층 더 강하게 작용한다. 자본주의 이전의 생산양식에서는 그렇지 않았거나, 그렇더라도 부분적인 수준에 그쳤다. 자본이 노동에 대한 실질적 지배를 확립하면 계급 간의 상호 전제는 더욱 긴밀해진다. 이때에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삶 전체가 자본에 의해 직접 통제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자본은 노동으로부터 숙련을 박탈했으며, 위기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모든 프롤레타리아에게 수공업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농업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산업화된 국가에서 농업은 철저히 자본주의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농촌으로 돌아가려는 사람은 가장 주변화된 프롤레타리아에 한정되고, 그마저도 빈민가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은 처지에 이르게 된다. 개발도상국에서도 마찬가지로 농촌의 변형 때문에,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떠났던 사람들이 실업 상태에 놓였을 때 다시 농촌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1998년 아시아 경제위기 당시와 오늘날 중국에서 벌어진 일이 바로 이것이다.
오늘날 두 계급의 상호의존은 그 어느 때보다 긴밀하다. 달리 말하면, 프롤레타리아트는 자본에 의해 위협받는 일자리를 자본 자체와 함께 구하지 않고서는 지켜낼 수 없다. 다시 말해 더 적은 임금을 받고 더 많이 일해야 한다. 숙련노동이 노동자의 손을 떠나 고정자본 속에 편입됨에 따라, 프롤레타리아트는 더 이상 형식적 지배 아래에서처럼 생산수단을 단순히 장악한 뒤 자본가 없이 생산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없다. 이러한 주장은 숙련직이 지배적이던 시기에도 이미 환상에 가까웠다. 오늘날에는 숙련노동자조차 자신의 활동을 가능헥 하는 기술적·물질적 조건 대부분이 노동수단인 기계, 컴퓨터, 차량 등에 편입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달리 말해 오늘날 소유의 기능은, 애초에 그러한 기능을 한 적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소유로부터 발생하는 소득을 누리는 데 있지 않다. 그 기능은 오히려 노동계급의 통제를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벗어나도록 발전해온 생산과 재생산의 체계를 관리하는 데 있다. 배당금을 수령하는 자본가들을 모두 제거한 뒤에도, 생산수단의 재전유만을 구항하는 노동계급 혁명은 그 수단의 관리를 특정 노동자 집단에 맡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집합적 자본가가 될 것이다. 오늘날 자주관리는 중간관리자들이 꾸는 헛된 꿈에 불과하다.
계급 간의 상호 전제는 방대한 고정자본을 중심으로 두 계급을 긴밀하게 결박한다. 이 때문에 노동계급을 긍정하면서 자본가만을 제거하려는 방식으로 위기를 혁명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모든 관념은 성립할 수 없다. 프롤레타리아트가 자본을 폐지하려면 임금노동, 노동의 내용을 규정하는 고정자본, 그리고 노동 그 자체를 폐지해야만 한다.
자본주의 사회가 정상적으로 재생산되는 한, 프롤레타리아트의 활동은 순환의 여러 국면이 연속되는 과정에서 자동적이고 직접적으로 도출된다.3 노동력이 일단 판매되면 노동의 내용 자체는 자본에 의해 직접 규정되고, 그 뒤에는 휴식과 노동력의 회복이 이어진다. 노동력의 판매는 자발적이고 선택된 행위와는 거리가 멀다. 노동자가 임금을 모두 소비하는 즉시, 곧 순환이 끝나자마자 다시 노동력을 판매해야 하기 때문이다.
위기가 폭발하면 사회 재생산을 지탱하던 이러한 모든 자동성은 사라진다.4 그러면 프롤레타리아트의 활동은 새로운 것을 고안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반란적 위기 속에서 상호 전제의 관계는 대결로 전환된다. 노동과 착취가 대규모로 중단되고, 노동과 자본 사이의 교환을 둘러싼 협상도 더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대결 속에서 자본가계급은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프롤레타리아트를 더 낮은 임금을 받는 노동으로 복귀시키려 한다. 반면 프롤레타리아트는 자본에 맞서 봉기하며 거부했던 생활수준보다 더 높은 생활수준을 관철하려 한다. 5
이 반란적 순간은—뒤에서 다시 다루겠지만—프롤레타리아트의 활동이 가장 강렬한 주체성을 띠는 순간이다. 역사가 보여주듯, 프롤레타리아트의 위기 활동은 각 시대마다 위기 속에서 맞닥뜨린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이전에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사회형태를 발명해왔다.
I.2 위기 활동 속 프롤레타리아의 개인화
자본이 번영하는 시기에 프롤레타리아트의 재생산을 지배하는 자동성에 관해 앞서 말한 바는, 개인보다 계급이 선행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즉 한 사람의 계급적 위치가 그 사람의 행동을 결정한다. 노동이 자본에 종속되는 방식은 프롤레타리아트에게 거의 아무런 자유도 허용하지 않는다.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주어진 자유란 자신의 노동력을 팔거나 죽는 것, 버스를 타거나 직장에 지각하는 것, 명령에 복종하거나 해고당하는 것 따위뿐이다. 작업장에서 상품을 생산하는 것은 특정 프롤레타리아 개인의 개별 노동이 아니라 오직 집단노동이다. 이러한 일반적 노동, 곧 협업은 자본에 속한다. 그 결과 계급의 재생산은 자본의 재생산을 이루는 한 계기에 불과하며, 프롤레타리아트의 활동은 거대한 대중적 일상으로 나타난다.
위기가 반란으로 전환될 때 무너지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자본가들이 제시하는 어떤 것도 더 이상 프롤레타리아트에게 받아들일 만하지 않게 된다. 프롤레타리아트가 그 이하로 떨어지면 자동으로 봉기하게 되는 불가침의 하한선과 같은 객관적 생활수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역사는 프롤레타리아트가 극심한 빈곤을 감내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생활수준의 저하가 자본의 다른 공격들보다 겉보기에 더 심각하지 않은 경우에도 그것을 거부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복종에서 반란으로 급격히 전환되는 조건은 미리 결정할 수 없다.
번영기에 일어나는 일과 달리, 반란에는 어떤 자동성도 없다. 프롤레타리아들은 자본에 맞서기 위해 서로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맺는 방식을 스스로 고안해야 한다. 프롤레타리아들 사이에는 상호작용의 과정이 전개되며, 그들의 개인화가 진전될수록 이 과정은 더욱 강렬해진다. 1848년 파리 노동자 지구 주변에 바리케이드를 세운 사건이든, 1918년 킬 수병들의 반란이든, 한 청년이 경찰에게 살해된 뒤 그리스 청년들이 아테네 도심을 파괴한 사건이든, 반란은 언제나 개인적 차원에서 시작된다. 말이나 행동으로 먼저 시작하는 몇몇 프롤레타리아들이 있어야 한다.
파리 코뮌이 시작되기 위해서는 몇몇 여성들이 경보를 울리고 티에르의 군대가 국민방위군의 대포를 탈취하지 못하도록 막으려 나서야 했다. 누구도 명령하지 않았다. 복종할 이유를 발견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반란이 시작되고 전개되는 방식은 언제나 어느 정도 수수께끼로 남으며, 역사책에서도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 어쨌든 지도자가 되려는 자들이 거기서 뽑아낼 교훈도 없다. 구체적인 상황은 매번 고유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매번 몇몇 프롤레타리아들이 개인으로서 주도권을 쥐고, 공포를 극복하며 합법성의 경계를 넘어섰고, 그로써 위기 활동이 상호작용적인 방식으로 형성될 수 있었다는 사실뿐이다. 이러한 위기 활동 없이는 어떠한 공산주의 혁명도 가능하지 않다. 주체의 개인화는 공산주의의 필수 조건 가운데 하나이다.
역사상 모든 프롤레타리아 반란은 위기 활동 속에서 프롤레타리아의 개인화가 강하게 전개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개인화는 계급적 소속 자체를 문제 삼게 만드는 자본의 위기에서 직접 비롯된다. 오늘날의 조건에서는 자본이 위기에 빠지기 이전부터 이미 프롤레타리아트의 탈대중화를 이루어놓았다는 사실, 곧 불안정 노동과 하청화 등이 위기 활동 속 개인화를 더욱 강화할 것이다.
그러나 위기 활동 속에서 주체의 개인화는 결코 원자화를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개인 간 상호작용을 바탕으로 모인 계급은 노동조합 깃발 뒤를 따르는 시위대와 같은 군중이기를 멈추고,6 행동하고 반응하며, 행동에 나선 뒤 그것을 수정하고, 내부에서 토론하며, 자본가들에게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맞설 수 있는 능동적이고 의식적인 집합체가 된다. 프롤레타리아 개인들 사이의 이러한 상호작용을 통해 프롤레타리아트는 공산주의의 가능성을 떠받치는 토대가 되는 내부적 사회관계를 형성한다. 그러나 이 사회관계는 구체적인 형태로 존재해야 한다.
I.3 자본의 요소들을 점유하되, 노동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반란에 나선 프롤레타리아트에 고유한 사회관계로서 위기 활동이 형성되는 것은, 반란적 프롤레타리아트가 자본과 대결하고 자본의 일부 구성 요소들—공장, 재고, 차량, 건물 등—을 점유할 때이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프롤레타리아트의 활동은 집회, 시위, 요구의 수준에 머문다. 프롤레타리아트의 활동이 그 수준을 넘어설 때, 그것은 질적 문턱을 가로지른다. 오직 그때에만 프롤레타리아트는 공산주의 혁명이 가능한 주체로 나타난다. 이러한 구분은 일상적인 계급투쟁의 흐름 속에서 이루어지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이 갖는 중요성을 상대화한다.
프롤레타리아트의 반란적 봉기는 자본의 일부 요소를 점유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출발점이 사회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상태에서, 사회를 자본으로서 마주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은 흔히 수탈자들을 수탈하는 일의 시작으로 이해되어 왔으며, 노동자들이 자신의 통제 아래,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시 노동에 복귀한다는 강한 함의를 지녔다. 이러한 함의는 주로 숙련노동에 기초한 프롤레타리아 정치가 발전시킨 이데올로기, 즉 자본이 노동자의 생산물을 훔쳐가며 노동자들은 자본가 없이도 손쉽게 생산할 수 있다는 관념에서 비롯된 듯하다. 당시에도 이미 이데올로기에 불과했던 것은 오늘날의 조건에서는 아무런 근거도 갖지 못한다.
봉기가 자본주의적 소유의 요소들을 점유하는 것은 결코 자신의 계산으로 생산을 재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이 일반적인 법칙이다. 반란에 나선 프롤레타리아들이 노동으로 복귀한 사례 가운데, 그 복귀가 봉기의 반혁명적 역전 과정에서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를 역사에서 단 하나라도 찾을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토 게이르토넥스7는 1936년 7월 스페인 봉기가 예외라고 본다. 봉기 초기 며칠 동안,
노동계급의 일부는 무장하기 위해 공장을 장악할 필요성을 깨달았다. 수많은 금속노동자가 이전까지 자신을 예속했던 도구를 사용해 트럭에 장갑을 둘렀다. 제빵사들이 갑자기 나타났고
[…] , 교통과 공공설비가 다시 가동되었다[…] 이러한 활동은 판매의 필요나 가치생산을 동기로 삼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혁명투쟁이었으며, 그 투쟁의 필요를 충족하는 생산은 동일한 움직임 일부였다.
그러나 여기에서 실제로 확인되는 것은 반란자들이 투쟁에 사용하기 위해 트럭을 개조하고, 제빵사들이 고용주의 가게를 점거하여 그곳에 남아 있던 밀가루로 빵을 구웠다는 사실뿐이다. 반란 초기 며칠 동안 실질적인 생산 순환이 구축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교통 문제를 보면, 바르셀로나에서 노동자들이 승리한 지 불과 일주일 뒤인 7월 27일, CNT의 주요 신문은 이미 “노동자들에게 압수한 차량을 모두 반환하고 노동에 복귀할 것을 모두 촉구했다.”8
반란자들은 그 차량으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어쩌면 즐기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차량에 자신이 속한 조직의 이니셜을 칠하고, 위험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바르셀로나를 질주했다. … 이 활동가들은 수많은 사고를 일으켰다.”9 같은 신문은 “정당한 이유 없이 결근한” 노동자들에게 제재가 가해질 수 있다고 경고해야 했다. 여기서 우리가 보는 것은 반란에서 노동으로 되돌아가는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반란이 노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반란은 경찰과 벌이는 단순한 싸움이 아니기 때문이다. 반란은 자본의 구성요소들—곧 생산수단—을 점유하면서도 그것을 노동에 사용하지 않는 프롤레타리아들 사이에 고유한 사회관계를 형성한다. 자본주의 이전의 반란은 지주의 소유물을 공격했지 생산수단을 공격하지는 않았다. 대규모 고정자본이 축적된 오늘날 자본주의 생산의 조건은 이 일반적 법칙을 더욱 강화한다. 우리 시대의 반란에서 자본의 요소들을 점유하는 행위는 생산수단을 재전유하고, 그 점유에 참여한 노동자들이 생산을 다시 시작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생산뿐 아니라 삶의 나머지 부분 전체를 완벽히 변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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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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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활동crisis activity: 자본주의의 위기가 반란적 국면으로 심화될 때, 통상적인 요구투쟁과 달리 나타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특수한 투쟁 용어를 가리키는 저자의 용어. (역자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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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용문은 마르크스의 『고타 강령 비판』에서 가져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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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자본과 프롤레타리아트 사이의 투쟁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이 투쟁은 끊임없이 지속되며, 착취관계가 계속 조정되는 과정의 일부를 이룬다. 투쟁의 반란적 국면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자신을 혁명적 주체로 정립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연속적 과정과 구별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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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성’ 또는 ‘자동적 재생산’이란 경제적 번영기에는 자본 재생산의 연속적 국면들, 곧 생산, 잉여가치의 실현, 재투자가 원활하게 이어진다는 뜻이다. 특히 이는 프롤레타리아트가 노동시장에서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는 의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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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반란적 프롤레타리아트가 단순히 이전의 생활수준을 회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더 높은 수준을 요구한다고 본다. 그러나 모든 반란이 이러한 방향성을 갖는다고 일반화할 근거는 이 대목에서 충분히 제시되지 않는다. 생존의 복구, 기존 질서로의 복귀, 비경제적 자유의 확대는 서로 다른 목표일 수 있다. (역자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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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개인화individualisation’는 개인들이 서로 고립되는 원자화를 뜻하지 않는다. 저자는 계급적 일상이 자동적으로 재생산되는 상태가 붕괴하면서, 각각의 프롤레타리아가 독자적으로 주도권을 행사하고 다른 개인들과 상호작용하는 주체로 출현하는 과정을 가리킨다. (역자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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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inst the Myth of Self-Management」, Project, 2009년 7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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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ael Seidman, Workers Against Work, Insubordinate Editions, 연도 미상, 91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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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책, I쪽. ↩